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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리의 챔피언 가리우스의 무덤은 그림자 숲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림자 숲의 외곽을 따라 북서쪽으로 쭉 향하면 ‘별의 무덤’이라는 분지가 나왔는데, 이름 그대로 먼 옛날 커다란 운석이 떨어지며 만들어진 분지였다.
자이난 협곡과 그림자 숲의 사이.
팬텀스티드를 타고 날아가던 유더는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달이 뜬 밤.
보름달이 아닌 반달이었지만 대신이라도 되듯 정말 별이 많았다.
‘별의 바다.’
알렉세이는 체스 마스터인 동시에 책 애호가였다.
주절주절 묻지도 않은 것들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자주 입에 담던 것이 별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별자리가 다르네.’
그러고 보니 플레이아데스의 별자리는 어떨까.
전생의 기억을 각성하기 이전의 유더 자신은 별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연약함의 형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과거의 자신에게 차가운 밤공기는 독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몇 개인가 아는 것들이 있었다.
마이아가 침대 맡에서 읽어주던 별자리 이야기.
창문 너머로나마 밤하늘을 보며 알려준 별들의 위치.
“무슨 생각해?”
등 뒤에서 들려온 달콤한 목소리에 유더는 문득 장난기가 돋아 웃으며 말했다.
“마이아 생각.”
보이진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입술을 삐쭉 내밀며 눈을 흘기는 코델리아.
여기서 질투하느냐고 놀리면 더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유더는 애써 스스로를 억눌렀다. 대신에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는 코델리아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겹치며 다른 말을 꺼냈다.
“별 본 적 있어?”
“지금 보고 있어.”
“눈으로 말고. 천체 망원경 같은 걸로.”
“전에··· 그러니까 전생 이야기하는 거야?”
“뭐··· 그렇겠지?”
“없어. 천제 망원경 같은 거 실제로 본 적두 없구. 유더 너는?”
“나는 있어.”
알렉세이와 함께하던 시절에는 정찰용 망원경으로 별을 본 적이 있었다.
은퇴한 뒤에는 비싼 천체 망원경을 하나 사서 방에 두었고.
“서울은 별이 잘 안 보이더라.”
“서울 살았네.”
“너는?”
“나두 서울.”
전생에 대한 이야기는 늘 제한적으로만 주고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현생의 기억 역시 강해짐에 따라 전생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덜하게 된 것도 있지만, 떠올리거나 생각하면 괴로운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라든가.’
유더 자신은 괜찮았다.
사실상 고아였고, 그나마 아버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을 알렉세이와는 전생에 이미 사별하였으니까.
하지만 코델리아는 아니었다.
부모님.
친구들.
어쩌면 있을지 모를 형제나 자매.
그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
채팅방에서 순위를 함께 확인하고, 떠들다 로그아웃을 하고.
거기서 끝이었다.
전생의 기억은 거기서 끊어졌다.
이후에 이어진 것은 플레이아데스에서 다시 태어나 지금까지 이어온 현재의 삶이었다.
기억이 끊어진 이유.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는 그때 죽은 것일까?
그리고 만약 죽었다면 왜 죽은 것일까.
가능성은 몇 가지 더 있었다.
예를 들어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만이 아니라 세계 자체가 멸망했다든지.
아니면 그 이후의 삶도 더 이어졌지만 전생의 기억들 가운데 딱 그 시점까지만 기억할 수 있다든지.
가설이 많았지만 무엇 하나 입에 담지 않았다.
괜히 코델리아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유더야.”
“어, 코델리아야.”
코델리아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더니 조금 더 몸을 기대왔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이야기들을 이어나갔다.
“서울 어디였어?”
“동네 말하는 거야?”
“응, 나는 상암동 살았는데. 마포구 상암동. 어딘지 알아?”
“알지. 설마 모를까. 방송국 많은데 말이지?”
“아네? 와본 적 있어?”
“있지. 나도······.”
“너두?”
“거기 살았으니까.”
“어?”
“거기서 살았다고. 상암동.”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깜박였다.
“진짜루?”
“어, 진짜로.”
“와, 세상에. 같은 동네였다고?”
“상암동 넓잖아.”
“넓지. 그래두그래두.”
살짝 흥분했는지 몸을 흔든 코델리아는 다시 유더를 꼭 끌어안으며 물었다.
“저기, 그럼 어디 살았어? 아파트 이름이라든지.”
“호구 조사야?”
“궁금하잖아. 어쩌면 이웃사촌이었을지도 모르구?”
“···XXX 아파트.”
“헐.”
“왜?”
“아니, 나도 XXX아파트라.”
유더는 팬텀스티드를 멈췄다. 저도 모르게 등 뒤에 찰싹 붙어 있는 코델리아를 보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몇 단지.”
“3단지.”
“미친.”
절로 욕지거리가- 아니, 감탄사가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뭐야, 설마?”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답하지 않았지만, 이쯤 되면 뻔했다.
코델리아는 어쩐지 모르게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유더를 조금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오히려 심장이 더 거칠게 뛰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유더야. 우리 이쯤에서 멈출까?”
“몇 동인지까지는 안 까고?”
“까, 깔까?”
조심스러운 물음에 유더는 강한 유혹을 느꼈지만 일단 한 번 참았다.
여기서 동까지 노출하고 나면 서로의 전생을 온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안 될 이유라도 있을까?
코델리아가 전생을 너무 강하게 떠올려 괴로워할까봐 두렵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나 306동 살았어. 너는?”
역시나 코델리아.
깜빡이 없이 들어온 고백에 유더는 헛웃음을 지었다.
“나··· 너 누군지 알 거 같아.”
“나, 나두.”
같은 동에 사는 사람이라면 싫든 좋든 몇 번은 얼굴을 마주하기 마련이었다.
그간 단편적으로 주고받은 전생의 이야기들을 조합하면 그중 누가 서로인지 알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진짜···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
“그러게.”
그냥 게임에서만 질긴 인연이 아니었구나.
전생에도 지금처럼 이웃사촌이었을 줄이야.
운명.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
“멋지고 잘생긴··· 분위기 있는 오빠라고 생각했는데.”
코델리아가 작게 중얼거리자 유더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했는데?”
“아니, 뭐··· 멋지고 잘생긴 건 맞는데······ 설마 게임 존나 못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그런··· 유치한 성격일 줄은······.”
“야, 나도 참 착하고 예쁜 애라고 생각했거든? 조용하고?”
“왜, 맞잖아. 착하고 예쁜 애. 나 안 예뻤어?”
코델리아가 뻔뻔하게 되묻자 유더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일단 되는대로 반격을 시도했다.
“입에 씨발을 달고 사는 애인 줄은 몰랐지.”
“야, 씨발은······.”
“그래, 감탄사라 이거지?”
유더가 윙크하자 코델리아는 볼을 한 번 부풀리더니 이내 다시 유더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런데 유더야.”
“어, 코델리아야.”
“전생은 전생이니까 오빠라고 안부를 거야.”
환생한 지금은 동갑이니까.
“그래, 나도 너한테 오빠 소리 들으면 기분 이상할 것 같다. 지금이 좋아.”
“정말? 정말 그래요? 네? 유더 오빠?”
잔망스럽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다.
때문에 유더는 코델리아를 애써 외면했고, 신이 난 코델리아는 몇 번이나 더 애교를 부려댔다.
“오랜만이네.”
“뭐가.”
“아니, 그냥. 이렇게 둘이서만 다니는 거.”
자그마치 전생의- 그것도 서로 이웃사촌이었다는 사실을 주고받은 마당이었지만 그렇게까지 새삼스럽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이미 플레이아데스에서의 18년이 있었고, 기억을 각성한 이후 함께한 1년이 훌쩍 넘는 시간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18년 전의- 먼 과거의 일보다는 최근의 일들이 더 떠올랐다.
처음 같이 가출해서 북부를 여행하던 때.
야생의 땅에 들어가 온갖 곳을 헤매고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
“그러네. 제국에 들어온 뒤로는 늘 누군가랑 같이 다녔으니까.”
온전히 둘만의 여행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아마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다시 한동안은 둘만 함께할 시간이 없을 터였다.
전쟁이 본격화될 것이니 말이다.
“전쟁··· 결국 진짜 일어나네.”
황제파와 재상파가 맞붙는 제국의 내전.
소소한 국지전 같은 것이 아니었다.
수만과 수만이 맞물리는, 어쩌면 제국 전역이 전화에 휩쓸릴지 모를 큰 전쟁이었다.
“그래도 원작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야. 앞으로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갈 거고.”
“그러게.”
코델리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더 우울한 생각을 하는 대신 새삼 유더의 냄새를 맡은 뒤 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유더야.”
“어, 코델리아야.”
“우리··· 저기서 쉬었다 갈까?”
밤이 늦기도 했구, 마침 적당한 곳도 있구.
뒤에 이어진 변명 같은 말을 들으며 유더는 아래쪽을 보았다. 달빛이 내리 쬐는 언덕 위에 반쯤 부서진 작은 교회가 보였다.
“아, 저기.”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영웅전기2에서는 알고 있는 장소였다.
‘에로스 교단의 교회였지?’
지금은 사라진, 사랑의 대천사 에로스를 신으로 모시는 집단.
“그럼 저기서 쉬었다 갈까?”
“응, 저기서 쉬었다 가자.”
별 거 아닌, 여행 중에 늘 일상적으로 해오던 일이지만 두 사람 모두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아니, 어색하다고 해야 할까.
‘쉬었다 가자.’
묘한 마력을 가진 말을 속으로 읊조린 유더는 팬텀스티드를 교회 쪽으로 몰아갔다.
&
“음, 좋아. 깨끗해졌다.”
오랜 세월 방치된 교회라 먼지가 수북이 쌓였지만 유더와 코델리아에게는 마법이 있었다.
워터폴로 쓸어버린 뒤 건조- 여기에 다시 클린 마법까지 사용하니 낡았지만 깨끗한 장소가 만들어졌다.
“작지만 목욕탕도 있네. 밥 먹고 씻으면 되겠다.”
에로스 교단의 성직자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 욕조를 확인한 유더는 일단 잠자리부터 꾸몄다.
‘이왕 지붕 있는 곳에 왔으니······.’
한 평의 아늑함을 펼치는 대신 공간 확장 주머니에서 가죽을 잔뜩 꺼낸 유더는 바닥에 겹쳐 깐 뒤 쿠션과 담요를 꺼내 펼쳤다.
여기에 조명을 쓸 촛불을 여기저기 잔뜩 밝히니 제법 그럴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짙게 깔린 어둠과 고요.
창밖으로 새어 들어오는 별빛과 애처로운 빛으로나마 주변을 밝히고 있는 촛불들.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킨 유더는 잠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불을 피운 뒤 솥을 얹었다. 저녁 준비를 위해서였다.
“유더야.”
“어, 코델리아야.”
“오늘이야말로 라면 먹을래?”
넷플릭스는 없으니까.
코델리아가 작게 중얼거리며 한 마지막 말에 고개를 살짝 갸웃한 유더였지만 이내 긍정을 표했다.
“그래, 오늘 먹자. 솜씨도 좀 보고.”
맨날 라면 타령을 하던 코델리아였으니까.
유더는 직접 만들어 튀긴 라면과 각종 재료들을 꺼내 늘어놓았다.
“맡기면 되나?”
“응응, 맡겨줘. 너 이제 깜짝 놀랄 거야.”
헤헤헤 웃은 코델리아는 바로 라면 끓이기에 돌입했는데, 물 조절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그 다음은 뭐··· 그냥 다 때려박는 거니까.’
그래도 코델리아가 끓이는 라면이었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 유더는 가만히 앉아서 코델리아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 됐다.”
5분이나 지났을까. 라면을 그릇에 담은 코델리아가 만족한 얼굴로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젓가락을 들었다.
“그럼 먹어볼까?”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무어라 답하는 대신 침을 꿀꺽 삼켰다. 살짝 긴장이라도 했는지 어깨가 굳어 있었다.
그리고 한 입.
코델리아는 다시 마른 침을 삼켰고, 유더는 인정했다.
“맛있다.”
“그치? 맛있지? 엄청 맛있지?”
“어, 맛있네. 엄청 맛있어.”
“헤헹, 내가 말했지? 엄청 맛있다고. 나 라면 엄청 잘 끓여.”
“그래, 너도 빨리 먹고. 라면 다 불겠다.”
“응응. 같이 먹자.”
기분 좋게 어깨를 으쓱인 코델리아는 자기 몫의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몇 분.
라면을 다 먹고 치우기까지 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시 서로를 보았다.
어색함.
아니, 묘한 긴장감.
“그······.”
“어······.”
“너부터 말해.”
“아니, 너부터.”
“음··· 씨, 씻을까? 어, 아니. 씻을까가 아니라. 나 먼저 씻을게. 아니다. 너부터 씻어. 응, 너부터 씻자.”
“그, 그럴까?”
일상적인 대화.
늘 해오던 이야기.
하지만 코델리아는 얼굴을 잔뜩 붉혔고, 유더는 헛기침을 토해댔다.
“흠흠, 그럼 먼저.”
“어, 응. 너 먼저.”
코델리아가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베베 꼬는 가운데 유더는 어쩐지 모르게 어색한 동작으로 일어나더니 그대로 서둘러 방을 나섰다.
그리고 10분이나 지났을까.
“너 씻어.”
“어? 어어.”
이제 막 씻고 온 유더는 바지만 입고 있었다.
즉, 상의를 벗어 탄탄한 가슴과 넓은 어깨, 복근이 새겨진 날렵한 허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살짝 젖은 머리칼.
저도 모르게 멍한 얼굴로 유더를 보던 코델리아는 호다닥 일어나 방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30여분 뒤.
왜 이렇게 안 오는지, 혹시 무슨 일 생긴 건 아닌지 물어봐야 하는지, 홀로 초조하게 고민하던 유더는 꿀꺽 침을 삼켰다.
얼굴을 발갛게 붉힌 코델리아가 젖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닦으며 들어섰다.
물기 따위 마법으로 날려버리면 되는데 왜 젖은 머리칼일까.
아니,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폼이 넉넉하고 편안한, 하늘하늘한 분홍빛 잠옷 차림의 코델리아.
“무, 물이 좋네?”
“어, 좋더라.”
사실 좋고 자시고가 어디 있겠는가 항상 하듯이 마법으로 만들어낸 물이었는데.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그렇게 말했고, 서로 공감했다.
“흠흠.”
괜히 헛기침을 토한 코델리아는 유더의 곁으로 와 앉았다. 이제 막 목욕을 했기 때문인지 샴프향에 코델리아의 살 냄새가 섞여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심장 소리.
고요했기에, 서로가 초인이기에 명확히 들을 수 있는 가슴의 고동.
코델리아는 몇 번이나 긴 숨을 토한 뒤 눈동자를 굴렸다.
들어올 땐 몰랐는데, 지금은 어쩐지 모르게 의식하게 되는- 사랑의 대천사 에로스의 성화와 조각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코델리아는 움찔했다.
유더의 손이 자신의 손 위에 겹쳐졌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커다란 유더의 손.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유더의 손이 코델리아 자신의 손을 완전히 장악했다. 단단히 깎지를 껴 움직이지 못 하게 하였다.
다시 꿀꺽.
마른 침을 삼킨 코델리아는 달뜬 숨을 토하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유더가 보였다.
코델리아 자신처럼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조금은 어색한 표정을 지은, 하지만 초록색인 두 눈은 달랐다. 평소의 신비로움 대신 강한 열망이 어려 있었다.
자연스럽게 입술을 맞췄다.
가볍게 한 번, 이어서 깊고 진하게 한 번.
유더의 커다란 손이 이번에는 허리를 안았고, 연이어 조금 더 높은 곳에 이르렀다.
코델리아는 뜨거운 숨을 토했다.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유더의 손길에 집중했다.
유더가 코델리아의 목과 쇄골을 함께 잡았다. 그대로 파인 곳을 살짝 누르며 손을 옆으로 옮기자 애당초 폼이 넉넉한 잠옷이 미끄러지며 하얀 어깨가 드러났다.
쓰러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코델리아의 붉은 머리칼이 하얀 담요 위에 펼쳐졌고, 유더의 그림자가 그런 코델리아를 뒤덮었다.
코델리아는 알았다.
오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손을 뻗어올렸다.
약간의 망설임을 품은 채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유더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계속해.
멈추지 마.
굳이 말로 하지 않았다.
유더의 손길이 이어졌다.
잠옷은 반 이상 벗겨졌고, 흐릿한 촛불 아래 하얗고 아름다운 몸이 드러났다.
유더가 거친 숨을 토했다.
평소처럼 이성적이지 못한 그 모습에 코델리아는 살짝 겁이 났지만, 그래도 이내 미소지었다.
유더였으니까.
너무나 좋아하는 유더였으니까.
“유더야.”
작게 말했다. 움찔하는 유더의 뺨을 어루만지며 직전보다 조금 더 작은 목소리로, 수줍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해본 적 없어서··· 잘 몰라.”
그러니까.
나는 잘 모르니까.
“너한테 맡길게.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네 마음대로.
코델리아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스스로가 한 말에 부끄러워 어딘가에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 얼굴이 너무 뜨거워 괴로웠다.
하지만 그건 유더도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붉어진 얼굴로 마른 침을 삼키더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무어라 말하는 대신 허리춤을 풀었다.
코델리아는 급히 눈을 감았다. 아니, 감을 필요는 없었지만 저도 모르게 그렇게 했다.
옷이 사르륵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렸고, 코델리아는 새삼 움찔했다. 용기를 내 살며시 눈을 떴다.
유더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실로 어마어마한······.
“어?”
잠깐. 잠깐, 잠깐.
저거 뭐야. 책에서 본 거랑 다르잖아. 정말로? 정말로 진짜?
하지만 코델리아의 당황은 길지 않았다. 더 큰 당황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무르기 없음이야.”
귓가에 들려온 단호한 속삼임에 코델리아가 숨을 삼켰다. 무어라 말을 이으려 했지만 무리였다.
유더의 입술이 코델리아의 입술을 틀어막았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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