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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전기2에서 플레이아데스를 파멸로 몰고 간 일곱 가지 재앙은 종류가 다양했다.
광룡 얄라바스카나 괴수 자바워크, 학살자 게오르그처럼 단순히 ‘강력한 개체’인 경우도 있었지만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재앙을 일으키는 경우 역시 존재했다.
불의 거인 카르트.
놈이 걸으면 지진이 일어났다.
주변을 자연스럽게 불바다가 되었으며, 숨 쉬듯이 뿜어내는 유독 가스로 인해 단련하지 않은 일반인은 놈의 곁에서 3분 이상을 생존하지 못 했다.
하지만 불의 거인 카르트가 야기하는 가장 큰 재앙은- 놈이 자연재해라 불린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화산 폭발 능력.
놈은 화산을 폭발시킬 수 있었다.
휴화산의 경우에는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폭발시킬 수 있었고, 사실상 활동을 정지한 화산조차도 놈이 힘을 불어넣으면 다시 폭발하여 용암으로 땅을 뒤덮고 분진으로 하늘을 가렸다.
제국이 멸망하는데 각기 큰 역할을 한 7대 재앙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불의 거인 카르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막대했다. 놈이 일으킨 연쇄 화산 폭발로 인해 제국 북부가 초토화되었으니 말이다.
‘그래, 언젠가는 싸울 거라 생각했지.’
놈이 최초로 등장하는 카탄 산맥을 뒤질 계획이었다.
얄라바스카나 자바워크의 경우처럼 아직 제대로 된 재앙이 되지 못 하였을 가능성이 높으니, 조기에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상이 엇나가 버렸다.
자신들의 방문으로 말미암아 악마 추종자들은 불의 거인 카르트의 이전 단계라 할 수 있을 용암 거인의 탄생을 서둘렀다.
사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예정보다 빠른 완성은 결함을 동반하기 마련이었으니 말이다.
문제가 된 것은 하나.
‘저것도 이미 재앙 아냐?!’
용암 거인은 거대했다.
말이 좋아 60미터지, 건물로 따지면 20층이 훌쩍 넘었다. 단순히 키만 큰 것이 아니라 덩치도 어마어마해서 어딜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감이 안 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런 놈이 날기까지 했다.
“시선을 끌어! 놈이 용맥에 가는 걸 막아야 해!”
유더의 뻔한 외침에 코델리아는 대답하는 대신 행동했다.
과감하게 놈의 정면으로 팬텀 스티드를 몰아갔다.
“히에에?!”
키라라가 기겁을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용암 거인의 눈앞에서 알랑거리며 냉기 마법을 구사했다.
“쳐라! 쳐라! 막 쳐라!”
날카로운 아이스 미사일 수십 개가 허공에 형성되더니 그대로 용암 거인의 머리를 향해 쇄도했다.
그야말로 얼음의 폭격이었다.
하지만 공격이 들어가는 느낌이 아니었다. 얼음이 박히든 말든 놈은 신경쓰지 않았다. 용암으로 뒤덮인 얼굴에는 눈과 코조차 없으니 애당초 약점이라는 게 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히에에!”
키라라가 다시 비명을 지르며 코델리아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용암 거인이 팬텀 스티드를 집어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린 탓이었다.
‘진즉에 배신했어야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키라라가 마음 속 외침에 아무렇게나 소리친 그때 코델리아는 오히려 씩하고 웃었다.
용암 거인이 이쪽을 노린다면 환영이었다.
“이쪽이야!”
코델리아가 크게 소리치며 자이난 협곡- 뱀의 왕 나가로스의 둥지와 정반대 방향으로 팬텀스티드를 몰았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코델리아는 계획이 어긋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등 뒤가 뜨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았어요! 살았어요!”
키라라가 기뻐했지만 코델리아는 욕지거리를 삼켰다. 용암 거인이 자신을 무시하고 나가로스의 둥지를 향해서만 나아갔기 때문이다.
“우오오오!”
바로 그때 유더가 용암 거인의 측면을 파고들며 검기를 날렸다.
극한의 힘을 가진 설화십이검의 한 수였지만 코델리아의 아이스 미사일 폭격조차도 그냥 몸으로 견뎌낸 놈이었다. 옆구리 일부가 단단히 굳기는 했지만 이내 다시 용암으로 녹아내렸다.
“나를 봐! 날 보라고!”
“히에에!”
코델리아가 다시 소리치며 용암 거인의 앞으로 날아가자 키라라는 아예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용암 거인에게만 집중했다. 다시 한 번 아이스 미사일을 퍼부어 놈의 시선을 끌고자 하였다.
콰가가가가가-!
하지만 소용없었다. 놈의 날갯짓은 계속되었다. 애당초 눈이 없기 때문인지 놈은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엉엉 울며 비는 키라라를 어를 틈도 없었다. 코델리아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용암 거인이 너무 거대했다.
평범한 마법으로는 놈을 저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정령왕 펀치라면 어떨까.
그거라면 놈을 붙잡을 수 있을까?
코델리아는 생각을 잇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조차 아까웠기 때문이다.
“간다아!”
팬텀스티드가 다시 한 번 허공을 달려 용암 거인의 머리 위를 차지했다. 발밑이 열기로 후끈거리다 못 해 뜨거웠지만 코델리아는 집중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주먹을 당겼다.
“정령왕 펀치!”
주먹을 내지른 순간 보이지 않는 칼날이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일시에 증발했고, 하늘에서 번개를 동반한 정령왕의 주먹이 쏟아져 내렸다.
콰앙!
거대한 주먹이 용암 거인의 등을 관통했다. 용암 거인은 비틀거리며 지상에 추락했다.
“와아아! 해냈어요! 해냈다구요!”
키라라가 기뻐했지만 코델리아는 아니었다. 오히려 인상을 찡그렸다.
갑자기 소진된 마력으로 말미암은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놈이 추락한 순간 코델리아는 직감했다.
‘죽지 않아.’
생각대로였다. 용암이 녹아내려 구멍을 메웠다. 용암 거인은 다시 고개를 들었고, 날개짓을 재개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날아올랐다.
“미친.”
대미지가 아주 없지는 않을 터였다.
정령왕 펀치를 난발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차근차근 대미지를 입히면 쓰러트리는 것이 불가능은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설화난영!”
유더가 설화십이검의 오의 중 하나인 설화난영을 펼쳤다.
수십 명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광범위 공격이었지만 불도저처럼 나아가는 60미터짜리 거인을 막기에는 무리였다.
비틀 거리던 놈은 유더조차 무시한 채 계속해서 나아갔다.
유더는 용암 거인과 나가로스의 둥지까지의 거리를 계산했다.
용암 거인의 속도를 생각하면 남은 시간은 3분도 되지 않았다.
‘생각하자, 승리 조건을 생각하자.’
놈을 막아야 한다.
죽이는 게 아니라 막아야 한다.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 하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뱀의 왕 나가로스를 이용해야 할까?
아니, 그건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나가로스를 이용해 이이제이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패배였다.
용암 거인은 나가로스도 무시하고 용맥에 몸을 던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방법이 있을까.
“유더!”
바로 그때 코델리아의 부름이 들려왔다. 유더는 급히 고개를 돌렸고, 코델리아는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시간을 벌어줘!”
유더는 지금 하는 거 보이지 않느냐며 화를 내지 않았다.
코델리아는 바보가 아니었다.
저렇게 소리친다는 건 무언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믿을게!”
재차 소리친 코델리아는 더 이상 용암 거인을 보지 않았다. 그 너머에 위치한 나가로스의 둥지를 보았다. 그대로 팬텀스티드의 배를 차 속도를 높였다.
“주, 주인님?!”
뭘 하려고? 설마 용암 거인에게 들이박으려고?
패닉으로 인해 뇌가 마비된 키라라는 더 이상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더는 아니었다. 용암 거인을 지나 나가로스의 둥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코델리아를 본 순간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서, 설마?!”
아니, 가능성은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코델리아였으니까.
이미 몇 번이나 전적이 있는 그녀였으니까!
“야!”
“괜찮아! 나만 믿어!”
유더의 일갈에 바로 응답한 코델리아는 계속해서 달렸고, 유더는 욕지거리를 토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탄했다.
승리조건을 달성한다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코델리아의 답은 틀리지 않았다.
“목적지에 가면 안 된다고? 그럼 목적지를 없애면 되잖아!”
용암 거인이 나가로스의 둥지에 가면 안 되는 이유는 그곳에 용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용맥을 없앤다. 미리 폭발시켜 용암 거인과 합체하는 것을 막는다!
[대부분의 문제는 폭발시키면 해결이 돼!]
코델리아 쪽에서 날아온 메시지 마법에 유더는 감탄사를 연달아 토했다. 벌써 저만치 앞서나간 코델리아를 위해 용암 거인을 붙잡을 방법을 모색했다.
“간다!”
유더도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광역기를 쓰는 대신 극한의 검기를 수도에 모았다. 마치 용암 거인의 등 위에 올라타기라도 할 것처럼 팬텀스티드를 몰았다.
[후대!]
벨렌시아가 유더의 의도를 간파했다. 소드 오리진의 힘을 증폭시켜 유더의 검기를 강화시켰다.
“우오오오오오오!”
팬텀스티드가 용암 거인의 등 위를 달렸다. 불타는 대지를 질타했고, 유더가 수도로부터 길게 뻗어나간 극한의 검기를 크게 휘둘렀다.
츠콰각!
노리는 것은 놈의 날개!
극한의 기운이 용암을 굳게 만들었다. 팬텀스티드가 허공을 박차며 방향을 전환했고, 유더는 굳어버린 용암거인의 날개- 정확히는 등과 날개가 연결된 부위에 비어있는 왼손을 내뻗었다.
“흑룡난무!”
일곱 마리의 흑룡이 유더의 손바닥에서부터 뿜어져 나갔다. 하나하나가 나아가며 커지니 아무리 거대한 용암거인이라 해도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연결 부위가 단순에 분쇄되었고, 날개를 잃은 용암거인이 재차 지상에 추락했다.
콰가강!
굉음과 함께 지축이 뒤흔들렸다.
이미 자이난 협곡 안에 들어온 마당이라 주변이 불바다가 되지는 않았지만 땅이 녹아내렸고, 지진으로 인해 협곡의 일부가 무너져 낙석이 쏟아졌다.
“하아, 하아.”
유더는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지체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십여 초 남짓.
하지만 반복한다면 시간을 더 벌 수 있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
용암 거인이 포효하며 새로운 날개를 뽑아냈다.
유더는 코델리아가 날아간 방향을 돌아보는 대신 재차 극한의 기운을 일으켰다.
그리고 1분 남짓.
1초가 아쉬운 그때.
“키아아!”
뱀의 왕 나가로스가 포효하며 몸을 일으켰다.
날개달린 거대한 뱀인 놈은 프로스트 앤빌에서 보았던 백사와 닮은 거대한 괴수였다.
“히에에······.”
키라라는 이제 제대로 울지도 못 했지만 코델리아는 달랐다. 나가로스가 짖던 말던 신경쓰지 않고 오직 한 곳만을 보았다.
‘저기다.’
용맥의 힘이 분출되는 곳.
예전이라면 봐도 몰랐겠지만 야생의 땅에서 여러 경험을 쌓았기에 단번에 간파할 수 있었다.
‘쉽지 않아.’
용맥이 깊은 곳에 있었다. 단번에 자극하여 폭발시키려면 평범한 공격으로는 부족했다.
“키아아!”
“히에에!”
나가로스의 포효에 맞춰 키라라가 비명을 질렀고, 코델리아는 다시 팬텀스티드를 돌진시켰다. 입을 크게 벌리며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나가로스를 향해 똑바로 달리다 팬텀스티드 채로 블링크를 펼쳤다.
츄확-!
나가로스를 지나쳤다.
그리고 느꼈다.
피어.
뱀의 왕이 발산하는 공포 마법.
오히려 잘 되었다. 놈 덕분에 이 근방에는 살아있는 생물이 없었다.
즉, 스플래쉬 대미지로 인한 주변 피해를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키아아!”
공격이 빗나간 나가로스가 급히 몸을 반전시켰다.
말레키스 같이 고등한 존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단지 거대할 뿐인 마수였지만 몸길이가 수십 미터에 달하니 날개를 펴며 몸을 뒤트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키라라는 다시 비명을 질렀고, 코델리아는 아예 보지도 않았다. 강력한 바람 마법으로 나가로스가 토해낸 독을 날려버림과 동시에 문라이트를 움켜쥐었다.
“멜리사!”
[보조합니다!]
말레키스의 드래곤 하트가 빛을 발했다. 정령왕 펀치로 인해 고갈되었던 코델리아의 마력을 단숨에 가득 채웠고, 코델리아는 신경이 타는 것 같은 고통을 씹어 삼키며 주문을 떠올렸다.
지표를 향해 추락하듯 내달렸다. 어느 순간 검게 물든 날개를 펼치며 소리쳤다.
“칼라마이트의 창이여!”
타천사로 화한 코델리아의 머리 위로 거대한 암흑의 창이 형성되었다. 지면이 가까웠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바로 창을 던지는 대신 왼손에 매직 블라스터를 들었다.
“합일!”
매직 블라스터에 칼라마이트의 창을 담는다.
강대한 마법을 순수한 파괴력으로 전환한다!
매직 블라스트.
이름 그대로인 매직 블라스터의 초필살기!
“간다아아!”
“꺄아아!”
코델리아의 외침과 키라라의 비명이 하나로 섞였다. 뱀의 왕 나가로스가 등 뒤에서 무시하지 말라는 듯 포효했지만 코델리아는 이번에도 오직 앞만 보고 달리며 소리쳤다.
“랜스 차징은!”
뒤를 돌아보지 않아!
지표와 닿는다.
충돌한다.
엉망진창으로 뭉개지고 부서진다!
콰앙!
매직 블라스터가 불을 뿜었다.
순백의 광휘가 지표를 향해 쏟아졌고, 용맥을 강타했다. 동시에 코델리아의 팔이 반발력을 견디지 못 하고 부러졌다. 팬텀스티드가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키아아!”
격노한 나가로스가 그런 코델리아와 키라라를 집어삼키려 했다. 키라라는 용기를 내 그런 나가로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안 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기괴한 각도로 꺾인 왼팔을 수습하며 코델리아는 땀을 뻘뻘 흘렸다. 고통스러운 가운데 이를 악물며 지상을 보았다.
닿는다.
나가로스가 이쪽을 집어삼킨다!
쾅!
폭음이 나가로스를 저지했다.
쾅! 쾅! 쾅!
연달아 일어난 폭발이 나가로스를 당황케 했다.
나가로스는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지?
지금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날아올라!”
코델리아는 알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팬텀스티드에 마력을 불어넣었더. 젖먹던 힘까지 내서 어떻게든 고도를 높였다.
키라라는 반사적으로 지면을 보았다. 코델리아와는 다른 의미로 헐떡이며 공포를 토했다.
쾅! 쾅! 쾅!
지면이 폭발했다. 지표가 갈라졌다. 깊은 곳에서부터 일어난 순백의 빛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고, 어마어마한 지진이 나가로스의 둥지를 통으로 무너트렸다.
콰가가가가강!
“키악?!”
당황으로 주저하던 나가로스의 머리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낙석이 떨어졌다. 머리를 다친 놈은 비틀거리다 쓰러졌고, 그런 놈의 머리 위로 협곡이 쏟아졌다.
콰가강! 콰가강!
마도왕국 마젤란의 수도가 사라지던 날.
그때와 같았다.
나가로스의 둥지 일대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어마어마한 파괴의 흔적에 키라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움직였다. 울면서 부러진 팔을 맞춘 뒤 매직 블라스터를 염동력으로 허공에 띄웠다. 문라이트를 움켜쥔 뒤 이번에는 나가로스에게만 집중했다.
“막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가로스를 잡는다!
협곡에 깔려 빈사상태가 된 나가로스의 머리에 코델리아의 마지막 여력이 쏟아져 내렸다.
쾅!
나가로스의 머리가 터졌고, 빛의 고리에 휩싸인 코델리아는 그제야 용암 거인이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아픈 가운데도 기쁨에 차 소리쳤다.
“좋아!”
계획대로!
목적지가 없어진 용암 거인이 허공에 정지했다.
마치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버벅이더니 돌연 저 먼 서쪽을 향해 돌아섰다.
‘야생의 땅.’
용맥이 많은 곳.
몇 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도착하려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며칠은 걸릴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코델리아는 바로 달려가는 대신 일단 팬텀스티드를 돌려보냈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더니 이내 아예 쓰러져버렸다.
“하으··· 하······.”
진이 빠진 키라라는 그런 코델리아의 곁에서 나자빠진 채 거친 숨을 토해댔다.
그렇게 십여 초 남짓이나 지났을까.
코델리아와 똑같은 생각을 한 유더가 이쪽으로 날아왔다.
“코델리아!”
“여기, 여기······.”
제대로 대답할 여력도 없어 작게 중얼거린 고작이었지만 유더는 코델리아를 찾아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코델리아의 앞에 착지한 뒤 안도의 숨을 토했다.
“하아.”
다행이다.
자이난 협곡의 4분의 1이 무너져 내렸지만 아무튼 재앙이 탄생하는 것은 막았으니까. 그러면 된 거겠지.
유더는 코델리아 앞에 앉은 뒤 다시 하늘을 보았다. 자이난 협곡에 사는 괴조들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잔뜩 놀랐는지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서쪽.
저 먼 야생의 땅을 향해 느릿느릿 날아가고 있는 용암 거인.
적당히 힘을 회복한 뒤 짤짤이로 쓰러트리면 될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황금의 용왕에게 맡기거나.’
어찌되었든 당장은 아니었다.
유더는 엉덩이를 끌어 코델리아에게 조금 더 다가간 뒤 포션을 꺼내 먹였다.
“하아. 으.”
“좀 살겠어?”
코델리아는 대답하는 대신 오만상을 쓰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시간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푹 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악마 추종자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랐으니, 대충 숨만 고른 뒤에 재차 용암 거인과의 싸움에 돌입해야만 했다.
“그래도 일단 포션 좀 마시구.”
벌컥벌컥 포션을 마신 코델리아는 부러진 왼팔에도 포션을 부었다.
그렇게 3분 남짓.
삭신이 다 쑤셨지만 코델리아는 몸을 일으켜 세운 뒤 다시 팬텀스티드를 불러냈다.
“가자.”
용암 거인 조지러.
“그래.”
우리가 아니면 누가 막겠니.
쓰게 웃은 유더는 먼지 투성이가 된 코델리아의 뺨을 한 번 꼬집어 준 뒤 자기 몫의 팬텀스티드에 올랐다.
그리고 두 시간 후.
부서진 용암 거인의 잔해 위에 누운 유더와 코델리아는 땀을 뻘뻘 흘리며 거친 숨을 토했다.
무한체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유더가 지칠 지경이었으니 코델리아는 말할 것도 없었다. 거의 그냥 시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용암 거인을 격퇴했다.
7대 재앙 가운데 하나를, 제국의 멸망을 야기할 수도 있을 적을 재앙이 되기 전에 격퇴했다.
“근데, 근데 말이야······.”
코델리아가 헐떡이며 말하자 유더는 상체를 일으켜 코델리아를 보았다.
코델리아는 눈을 꽉 감으며 말을 이었다.
“뭔가, 뭔가 찝찝해.”
나가로스도 잡고 용암 거인도 잡았는데.
레벨 업도 하고 악마 추종자들의 음모도 막았는데
왜일까.
왜 이렇게 찝찝한 기분이- 뭔가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일까.
‘키라라?’
아니었다. 저만치 바닥에 얼굴을 박은 채 헐떡이고 있었다.
부들부들 떠는 걸 보니 지치긴 했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대체 뭘 놓친 것일까.
“아.”
유더가 말했고,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다. 이내 똑같이 목소리를 내었다.
“아.”
잊고 있던 것.
용암 거인에 정신이 팔려 망각해버린 목표.
자이난 협곡에 자리한 네 번째 석판.
유더와 코델리아는 급히 동쪽을 돌아보았다.
저만치 먼 곳에 자리한, 난장판이 된 자이난 협곡의 모습에 울면서 웃었다.
&
< 제111장 - 자이난 협곡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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