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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라는 세계에 일곱 대천사가 있었다.
처음부터 일곱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태어난 것은 심판의 대천사 아우리엘이었다.
그녀는 필요에 의해 탄생한 존재였다.
그녀 이전의 천계는 혼돈으로부터 비롯된 악이 창궐한, 차라리 지옥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세계였다.
천사들의 바람이 그녀를 탄생시켰다.
악에 짓눌려 신음하던 천사들의 소망이 심판의 대천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만들었다.
아우리엘이 세상을 심판하였다.
그녀는 손수 백 자루의 검을 벼린 뒤 자신을 따르는 천사들과 함께 천계에 만연한 악을 멸하였다.
세계의 정화.
혼돈 앞에 선 그녀는 자신의 임무가 끝났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천사들 사이에서 두 번째 대천사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우리엘의 역할은 심판이었다.
악의 심판이 끝난 지금, 세계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다른 대천사의 역할이었다.
하나 둘 새로운 대천사들이 태어났다.
정의의 대천사 라구엘.
사랑의 대천사 에로스.
치유의 대천사 라파엘라.
죽음의 대천사 사리엘.
달의 대천사 가브리엘.
그리고 마지막 대천사이자, 천계 전체에 빛을 불러올 태양의 대천사 솔라리.
아우리엘은 자신의 형제이자 자매인 대천사들 모두를 아끼고 사랑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솔라리를 사랑하였다.
“솔라리······.”
천계의 가장 높은 곳.
검을 늘어트린 채 서서 인계- 플레이아데스를 지켜보던 아우리엘은 시선을 조금 더 멀리하였다.
오랜 옛날, 천계를 집어삼키기 직전까지 갔었던 지옥을 노려보았다.
솔라리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벌써 수백 년 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녀와 함께 플레이아데스에 내려갔던 사랑의 대천사 에로스와 달의 대천사 가브리엘도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곱 대천사는 사대천사가 되었고, 아우리엘은 솔라리의 복수를 맹세했다.
“아우리엘, 거기 있나요?”
조심스러운 부름에 아우리엘은 고개를 돌렸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정의의 대천사 라구엘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아우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아우리엘 자신 역시도 라구엘과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이쪽으로 오라.”
아우리엘의 나직한 부름에 라구엘은 우울한 미소를 지었다.
솔라리가 죽은 이후 아우리엘에게 일어난 변화를 안타까워하며 광익을 펼쳤다.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지옥의 동태.
일곱에서 다섯이 된 대군주들의 움직임.
라구엘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우리엘은 잠시나마 눈을 감았다.
항상 태양처럼 환히 웃던 솔라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
“안녕?”
붉은 머리의 대천사.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밝은 미소와 듣기 좋은 목소리.
아침의 영광과도 같은 빛의 고리 아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있었다.
코델리아는 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
기록에는 자주 이런 표현이 나오고는 했다.
솔라리는 일곱 대천사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이니, 설사 지옥의 악마라한들 사모의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었노라고.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이었다.
고결함.
그냥 예쁘다 아니다 하는 수준이 아닌, 고결하다는 표현 외에는 어울리지 않는 여인.
하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친근하였다.
언니처럼, 친구처럼, 금방이라도 말을 걸어올 것 같았다.
아침의 영광을 상징하는 황금빛 헤일로와 여덟 장의 날개.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기도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라리는 그런 코델리아의 모습에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살짝 좁히더니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할게. 안녕.”
그리고 손까지 살짝 흔들자 코델리아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색하게나마 손을 들며 마주 인사했다.
“아, 안녕. 아니, 안녕하세요.”
얼굴을 붉히며 인사하자 솔라리는 마치 카이사처럼 까르르 웃었다.
“귀여워.”
“어, 음··· 네.”
굳이 대답할 필요 없는 말이었지만 대답했고, 솔라리는 더욱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아, 운이 좋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니.”
혼잣말하듯 작게 중얼거린 솔라리는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
푸른 하늘 아래 바람이 불었고, 새하얀 꽃밭 위로 꽃잎들이 흩날렸다.
그리고 손짓.
여기 와서 앉으라는 것 같은 눈빛.
코델리아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용기를 내었다. 조금 쭈뼛 거리긴 했지만 솔라리의 곁으로 뻘뻘뻘 다가간 뒤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좀 더 이쪽으로. 안아보고 싶어.”
“네? 어··· 네.”
솔라리의 계보에 속한 코델리아였다.
조금 과한 비유였지만 솔라리는 코델리아에게 있어 언니이자 어머니이자 먼 선조와도 같은 존재였다.
“응, 귀엽다. 따뜻해. 착하기도 하구.”
솔라리의 말에 코델리아는 얼굴을 더욱 붉혔다.
마치 곰인형처럼 솔라리의 품에 안겨있는 상황 자체보다는, 솔라리에게 칭찬을 들었다는 사실에 황홀함을 느낀 탓이었다.
“다행이야. 너 같은 아이가 찾아와서.”
“저 같은··· 아이요?”
솔라리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코델리아가 살며시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상황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여긴 솔라리의 무덤이 아니었나?
그럼 눈앞에 있는 여인은 대체 누구인 것일까.
밖에 있던 가리우스처럼 사념인 걸까?
“응, 맞아. 사념이야. 솔라리의 무덤에 남은 미련, 솔라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남긴 바람 등등이 뭉쳐 만들어진··· 찌꺼기···는 내가 너무 슬프고, 흔적? 잔흔? 뭐, 애당초 슬픔이라는 걸 느낄 수도 없지만.”
마지막 미소가 너무 슬퍼 보여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솔라리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고, 솔라리는 다시 웃었다.
“착해. 응, 착해.”
코델리아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던 솔라리는 내친 김이라는 듯 코델리아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와, 이 감촉 좀 봐. 장난 아니야.”
그리고 쭉쭉.
요즘 유더에게 자주 꼬집혀서 익숙해진 코델리아였지만 저런 식으로 말하니 기분이 참 묘해질 수밖에 없었다.
“으유, 귀여워라. 마음 같아서는 계속 같이 놀고 싶지만··· 역시 그럴 수는 없는 거겠지. 계속하면 그 녀석이 화낼 것도 같고.”
“네?”
잠깐, 그 녀석이라고요?
“어, 그 녀석. 질투심이 엄청 많은 그 녀석.”
이쯤되면 누굴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때문에 코델리아는 새삼 목소리를 높였다.
“유더! 유더는 지금 어디에 있죠?”
“다른 꽃밭에서 날 마주하고 있어. 그런데 음··· 참 대단하네.”
“네? 뭐가요? 서, 설마?”
“아니, 잠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이 아니라 알 거 같지만 그런 건 아니야. 어, 진짜로. 나한테는 별로 관심도 없는 걸?”
“네?”
민망하기 짝이 없는 앞의 내용들은 둘째치고 마지막 이야기는 무엇인가.
관심이 없다고?
“어, 살짝 자존심이 상할 정도인데? 날 딱 보자마자 하는 생각이 뭐였는지 알아?”
“뭔데요?”
“역시, 코델리아가 제일 예쁘군.”
코델리아의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 바보! 바보! 바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말한 건 아니야.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지.”
쿡쿡 웃은 솔라리는 민망함과 기쁨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 코델리아의 뺨을 다시 꼬집었다.
“아무튼 유더라면 걱정하지 마. 용무가 끝나면 금방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용무요?”
“어, 용무. 유더는 할 수 없고, 오직 너만이··· 야한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찼긴 했지만 누구 말마따나 착하고 순수하고 예쁘고··· 아무튼 딱 내 후계자가 되기 딱 좋은 너만이 할 수 있는 거.”
코델리아는 다시 눈을 깜박였다.
“후계자요?”
“어, 후계자. 뭐, 당장 널 대천사로 만들어주겠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야. 그럴 능력도 없고.”
어깨를 으쓱인 솔라리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자신의 고리에 손을 대었다.
“솔라리의 헤일로.”
그녀의 왕관.
태양의 신격.
“솔라리가 죽었을 때는 이미 지상에 제대로 된 천사가 남아있지 않던 상황이었어. 천계와의 연결로는 끊어졌고- 아니, 끊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말이야.”
푸른 하늘에 노을이 번졌다.
황혼과 함께 밤이 찾아왔고, 다시 저 먼 곳에서부터 아침의 영광이 깨어나 여명을 밝혔다.
솔라리는 그 아래에 있었다.
여덟 장 날개를 활짝 펴며 작은 태양과 같은 고리를 살며시 떼어 코델리아의 고리 위에 겹쳐 주었다.
“솔라리가 죽고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났어. 애당초 그녀가 죽음을 맞이해야 할 정도로 큰 힘을 소모한 상태였고. 때문에 헤일로에도 남아 있는 힘은 그리 많지 않아. 하지만 태양의 신격이 너와 함께할 거야.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순간에 태양의 빛을 발하겠지.”
솔라리의 헤일로가 코델리아의 헤일로와 하나가 되었다.
은은하고 따뜻한 빛이 코델리아의 전신을 휘감았다.
“네가 여기에 온 것은 처음이 아니야. 하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는 처음이지. 처음이자 마지막에나마 물려줄 수 있어 다행이야.”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미안해, 자세히는 말해줄 수 없어. 하지만 너도 곧 알게 되겠지.”
코델리아는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었다.
스르륵 눈이 감겼고, 솔라리의 목소리가 조금씩 멀어져 갔다.
“과거는 언제나 미래를 향해 날아가. 고고한 시간의 흐름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없는 법이야.”
“코델리아.”
“운명의 아이야.”
“부탁할게.”
“부디··· ·········를······ 구해······.”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대신에 다른 기억들이 코델리아의 머릿속에서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었다.
마인이 되어 언니의 목숨을 빼앗던 자신.
유더 앞에서 마이아의 목을 가르던 자신.
유더와 함께 마인이 된 루카스와 싸우던 자신.
폐허가 땅 위에서나마 결혼식을 올리는 루카스와 스칼렛을 보며 미소짓던 자신.
그리고 마지막 기억.
유더와 손을 맞잡은 채 마지막 사랑을 속삭이며 함께 죽음을 맞이하던 자신.
기억의 혼재 속에서 코델리아는 눈물을 흘렸다. 엉엉 울면서 유더를 부르짖었다.
솔라리가 그런 코델리아를 바라보았다.
솔라리의 헤일로를 물려받는 코델리아를 보며 생각했다.
고고한 시간의 흐름.
위화감.
온전할 수 없는 기억들.
그렇기에 불완전한 계획.
아니, 설사 기억이 온전하다 할지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현실.
기적은 일어날 것인가.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황금빛으로 물들던 하늘에 균열이 일었다. 바람과 함께 지상이 흩어졌고, 산산이 조각난 하늘이 반짝이며 쏟아져 내렸다.
솔라리는 다시 코델리아를 보았다.
신은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솔라리는 코델리아를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했다.
“부디··· 성공할 수 있기를.”
그 녀석의 의지가 기적을 일으킬 수 있기를.
솔라리는 마지막으로 하늘을 보았다.
부서지는 하늘 아래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건방진 그 녀석.
또 한 명의 운명의 아이.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기적을 일으키겠다고 소리치던 그.
“그 후로 그들은 영원히 행복했습니다.”
솔라리는 작게 웃었다. 지켜볼 수는 없지만, 그리되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기도했다.
빛이 세상을 뒤덮었다.
솔라리와 함께 사라져갔다.
&
“···델리아!”
목소리가 들렸다.
“코델리아!”
기억이 끊어졌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기억들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알처럼 사라져갔다.
“코델리아!”
“유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크게 소리치며 눈을 떴고, 눈앞에 있었다.
유더 바이엘.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사랑할 사람.
영원한 반려.
“괜찮아? 어디 아픈 거 아니야?”
“괜찮아. 괜차나······.”
정말로 괜찮았다. 아픈 곳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눈물이 나왔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보듬었다.
유더의 온기.
유더의 냄새.
슬픈 기억들이 사라졌다.
겨우 마음을 추스른 코델리아는 몇 번 훌쩍이다가 유더를 살며시 밀어냈다.
“자, 킁하고.”
“킁!”
손수건에 코까지 풀고 나자 겨우 주변을 돌아볼 정신이 들었다.
“여기··· 어디야?”
별의 무덤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곳이었다.
초원? 평원?
밤이었지만 정확한 시간 역시 알 수 없었다.
다소 높은 기운.
습기를 머금은 바람.
‘여름?’
눈을 깜박이던 코델리아는 다시 유더를 보았다. 유더는 주변이 아닌 하늘을 보고 있었다.
“유더야?”
부름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진지한 얼굴로 하늘을 노려보던 유더는 이를 악물었다.
“큰일이야.”
“뭐, 뭐가?”
얼른 따라서 하늘을 보았지만 딱히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거나, 막 피처럼 붉어진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무슨 이야기인 것일까.
아직 제대로 써보진 않았지만 솔라리의 헤일로도 제대로 물려받은 것 같은데.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코델리아는 문득 다시 눈을 깜박였다.
유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깨달았다.
더위.
습기.
변해버린 계절.
“시간이 흘렀어.”
유더가 말했다.
별자리의 변화를 보고 판단한 것이었다.
솔라리의 무덤에 들어설 당시는 봄.
하지만 지금은 여름이었다.
적어도 두 달. 어쩌면 세 달까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와아아아아!”
“쳐라!”
“성을 함락시켜라!”
쾅! 쾅! 쾅!
멀리서 들려온 고함과 굉음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서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세 달이란 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달았다.
실라테스 평원.
왕국과 제국의 접경지.
“전쟁이··· 시작됐어.”
내전을 넘어 세일룬 왕국과 아르곤 제국의 전쟁이.
유더와 코델리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가타부타 따지는 대신 전투가 펼쳐지고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제116장 - 태양신 솔라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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