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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서 두 달 사이.’
위치 정보까지 조합했을 때 추정한 수치였다.
분명 솔라리와 함께한 시간은 기껏해야 이틀 정도에 불과했을 터인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던전북.”
코델리아가 말했고 유더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논리였다.
던전북 내부와 밖은 시간의 흐름이 달랐다.
안에서 대여섯 시간을 보내도 밖으로 나오면 한 시간 밖에 흐르지 않은 것이 보통이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그 역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하나.
“이틀이나 있었다고?”
전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와중이었지만 정보 교환 자체를 멈출 수는 없었다.
등에 업힌 코델리아가 깜짝 놀라서 묻자 유더는 빠르게 답했다.
“솔라리의 사념··· 아니, 솔라리 말로는 네게 헤일로를 물려주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어. 정확히는 네가 헤일로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시간?”
“아.”
헤일로- 천사의 고리를 물려받은 직후.
의식이 없었지만 그 사이에 무려 이틀이란 시간이 흐른 모양이었다.
“그 이틀이 밖에서는 사십여 일이 되었고?”
“아마도 그렇겠지.”
그리고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전에 알았더라도 사십여 일을 보내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헤일로는 잘 받았어?”
“어? 어··· 아마도?”
“갑자기 네가 대천사가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했어. 하지만 신위를 품었으니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질 거야. 개방할 수 있는 힘도 크게 늘었을 거고. 한계치 자체가 달라졌으니까.”
코델리는 이제 평범한 천사 따위가 아니었다.
아직 그 지위에 어울리는 힘을 온전히 갖추지는 못 하였지만 자격만 놓고 보자면 이미 신과 같았다.
“그리고 나는 신이랑 사랑하는 남자고.”
“뭐라는 거야!”
코델리아가 어깨를 때리자 유더는 씩 웃었다.
신위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에 코델리아가 긴장한 것 같아 일부러 한 농담이었는데, 효과가 있어 다행이었다.
‘사실이기도 하고.’
유더는 살짝이지만 어깨를 으쓱으쓱 거렸고,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의 등을 몇 번 더 때렸다.
“아무튼 그럼 둘 다 파워업 한 거네?”
코델리아 자신은 솔라리의 헤일로를 얻어 태양의 신위를 얻었다.
아직 이렇다 할 변화를 느끼지 못 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였다.
유더의 말마따나 신위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차이는 극명했다.
“신이 된 걸 파워업···이라 하니 뭔가 저렴해지는 기분이지만 뭐, 맞는 말이겠지.”
유더 또한 강해졌다.
검은 사내- 검리에 닿은 유더와의 대련은 참으로 많은 것들을 안겨 주었다.
진정한 검성.
검리의 지평을 바라볼 수 있는 자.
그리고 어영부영 넘어간 감이 좀 있었지만, 소드 오리진의 제2형태를 개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름하야 검령합체.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유더클레스.
[후대, 이름이 그게 뭔가요. 검령합체까지는 마음에 들지만 유더클레스에는 제 이름이 안 들어가잖아요.]
문제는 그거였나.
하지만 유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빠르게 답했다.
“하지만 정령이나 영혼과의 합체에는 XX클레스라고 이름 붙이는 게 영웅전기의 국룰이라서요.”
“합체? 너 합체해? 설마 벨렌시아 님이랑?”
코델리아가 깜짝 놀라서 묻자 유더는 흠칫했다.
“어? 아니, 어. 소드 오리진 제2형태가 그거더라.”
검령과 하나되는 것.
그로 말미암아 더욱 더 완벽한 심검합일을 이루는 것.
“벨렌시아 님이랑 합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코델리아의 목소리가 어쩐지 모르게 싸늘했다.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든 유더는 서둘러 변명했다.
“아니! 건전! 맞아, 건전한 합체거든? 그냥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 되는··· 그런 합체?”
[후대, 자책골 같아요.]
정말로 그러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가 된다고?
그걸 다른 여자랑 한다고?
“아, 아니이! 그러니까! 베, 벨렌시아! 벨렌시아도 뭐라고 좀 해줘요!”
[하아··· 후대의 말대로에요. 그냥 힘을 합치는 정도라고 할까요. 두 사람의 합체랑은 좀···이 아니라 그냥 다르죠.]
어째서 이런 것을 해명하고 있는 것일까.
벨렌시아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목소리를 유더 밖으로 내자 코델리아는 입술을 삐쭉이더니 유더의 귀를 아프게 꼬집었다.
“아?”
“몰라. 아무튼 꼬집을래.”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그래도 화나는 건 화나는 거였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벨렌시아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본다는 듯 미간을 잔뜩 좁히며 말했다.
[후대, 왜 웃고 있는 거죠? 설마 미친 건가요?]
‘아뇨, 그··· 코델리아가 질투하는 게 귀여워서?’
정말 사랑스럽지 않나요?
유더의 반문에 벨렌시아는 차게 식은 표정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멜리사는 나름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었다.
[아무튼 많이 강해지셨다는 거네요?]
“어, 맞아. 많이 강해졌어.”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압도하는 신체능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로 태양과 같은 내공. 여기에 검성의 이름에 어울리는 검술이 더해졌으니 실로 완전체에 가까웠다.
“그럼 이제 아웃복서009보다 강한 거야?”
유더가 영웅전기2에서 키웠던 캐릭터.
서버 랭킹1위를 23개월이나 독식하던 일대일의 최강자.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해.”
지금의 자신이.
그리고 앞으로도 강해질 터였다.
아직 구천구문에는 제팔문과 제구문이 남아 있었고, 신뢰십이보 역시 궁극이자 환상의 영역인 천둔구보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문득 드는 생각들이 있었다.
아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들이었다.
유더 자신은 물론이고 코델리아까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자신들’의 기억.
‘분명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야.’
만들어진 가공의 기억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전부 실제로 일어난 일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일까.
평행세계?
회귀?
그 둘조차 아닌 다른 것?
당장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기대했던 솔라리조차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답을 주기를 꺼려한다는 느낌이었다.
‘솔라리는 답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아직 때가 아니라 생각했다.
어째서일까.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가 기억들의 정체를, 어째서 자신들이 그런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을 왜 원치 않은 것일까.
‘시간의 문제.’
지금이 아닌 나중에는 괜찮다.
아니, 나중에는 밝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밝혀져서는 아니된다.
유더는 일단 생각을 끊었다. 그리고 다른 것을, 연속해서 떠오른 기억들 때문에 간과하고 있던 중요한 사실에 의식을 집중했다.
‘검은 유더는 엄청나게 강했어.’
무려 검리에 닿은 검사였다.
가리우스는 ‘기억하는 최강의 검사’라 하였으니, 유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른 유더의 기억들 가운데서도 검사로서는 그가 최강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다.
정확히 무얼 어떻게 실패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맞이한 것이 배드 엔딩이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유더들 또한 그러했다.
검은 사내보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괴롭고 힘든 길을 걸었고, 끝에 가서는 모두 슬픈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그토록 강한 검은 사내조차 이길 수 없었던 적은 대체 누구인가.
영웅전기3는 지옥의 악마들과의 싸움을 다루고 있었다.
마지막 확장팩이 나오지 않아 대군주와 직접 대결을 펼치지는 않았지만, 최종보스가 대군주- 그 중에서도 음욕의 대군주 아스모데우스일거라는 이야기는 영웅전기담에서는 상식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소환을 막지 못한 미래들.’
유더는 마른 침을 삼켰다.
다른 유더들이 겪은 수많은 패배들이 새삼 목을 죄여오는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달라.’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가 처음부터 함께 했으니까.
왕국에서 일어났어야 할 여러 비극들을 모조리 막아냈으니까.
대소환을 막아낸다.
모두를 지켜낸다.
코델리아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 같은 해피엔딩을 이번에야말로 쟁취한다.
“유더야.”
코델리아의 속삭임이 유더를 현실로 이끌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
“급보입니다! 카라툼 요새가 함락되었습니다!”
“곳곳에서 소규모 접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급보! 카라툼 요새를 함락시킨 병력이 이쪽을 향해 기동 중입니다!”
연달아 들려오는 통신 마법사들의 보고에 세일룬 왕국군 총사령관- 황금의 검성 이안 맥클라인은 이를 악물었다.
개전 직후.
제국- 정확히는 역도의 무리인 재상부는 버티고 지키는 대신 공세를 택했다.
상식적으로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재상부는 혼자가 아니었다.
동방에서 어마어마한 병력이 유입되었다.
성십자 수호단이 힘껏 버티고 있었지만 국경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개전 50일째.
황금사자 기사단을 주축으로 한 세일룬 왕국군은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남하를 개시한 재상군에 맞서 방어진을 펼쳤다.
적의 주력을 이끄는 것은 바톨레인 원수와 그랜드 소드 마스터 루시우스 그란데.
벌써 10년 가까이 실라테스 평원을 지켜온 황금의 검성에게는 익숙한 상대들이었다.
‘이 정도의 여력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냐.’
바톨레인 원수가 이끄는 재상군은 무척이나 단순한 전략을 취했다.
전선을 넓히지 않고 좁힌다.
전력을 총동원해 세일룬 왕국의 국경을 뚫는다.
때문에 황금의 검성 역시 병력을 한 데 모아 총력전을 펼쳤다.
실라테스 평원을 무대로 재상군과의 대회전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
전선에서 서로를 대치하고 있을 때 급보가 연달아 들어왔다.
지금까지 관측되지 않았던 대군이 카라툼 요새를 함락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이쪽을 향해 진군을 개시했다.
절대 정상적인 군대 운용이 아니었다.
아무리 정예군이라 한들 요새 하나를 함락시킨 직후 먼 거리를 이동해 회전중인 부대를 치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상대는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애당초 병력의 구성 자체가 일반적인 군대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악마 추종자 놈들.’
마인과 마물들.
하지만 깨닫는 것이 너무 늦었다.
급히 후방에 대기 중이던 병력 일부를 파견했지만 사후약방문에 불과했다.
“각하! 재상군이 움직입니다!”
황금의 검성 역시 볼 수 있었다.
마치 급보를 기다렸다는 듯 재상군이 일제히 진군을 개시했다.
한바탕 큰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
‘정면을 막는다.’
비정상적인 기동 속도로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오고 있는 마인들의 군대가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 여기서 병력을 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출진 나팔을 불어라!”
황금의 검성이 검을 뽑아 명령하자 세일룬 왕국군 측에서도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연달아 깃발을 움직였다.
기사들이 병사들을 독려했고, 실라테스 평원을 가득 채운 왕국군 모두가 크게 소리치며 제국군을 맞이했다.
두 대군의 충돌.
재상군을 이끄는 바톨레인 원수는 미소를 머금었다.
마인들의 군대가 왕국군의 측방을 쳐 회전을 승리로 이끈다면 좋았다.
설사 그것이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플랜B가 남아 있었다.
마인들의 군대를 회전에 합류시키지 않고 왕국군 내부로 침투시킨다. 그리하여 놈들의 후방을 유린한다.
물론 단위 전투력이 아무리 높다고 한들 1만도 되지 않을 마인들의 군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정말 놈들이 후방으로 침투하면 왕국군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놈들을 저지할 터였다.
하지만 그리하면 최전선이 흔들린다.
설사 오늘 전투를 무승부로 이끈다 할지라도 황금의 검성은 더 이상 실라테스 평원을 지켜내지 못 하리라.
‘어느 쪽이든 좋다.’
바톨레인 원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오래지 않아 일어날 일들을 상상하며 기껍게 기다렸다.
하지만 반시간 뒤.
바톨레인 원수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소식이 전해져 왔다.
&
마인들과 마물들로 구성된 군대를 이끄는 것은 악마의 눈의 최상급 마인인 카라반이었다.
단숨에 카라둠 요새를 함락시킨 그녀는 특기인 사령술을 부려 왕국군을 좀비와 스켈레톤으로 만들었다.
싸우면 싸울수록 오히려 병력이 늘어나는 것이 그녀의 군대였다.
“전진 앞으로.”
해골마 위에 앉은 그녀는 병정놀이를 하듯 즐겁게 읊조렸다.
악마의 눈과 손의 상급 마인들이 그녀의 명에 따라 하급 마인들과 마물들을 이끌고 회전이 한창일 실라테스 평원 쪽으로 향하였다.
비정상적인 진군 속도.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녀의 군대에 순수한 인간 따위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가라, 가서 우리의 적을 휩쓸어버려라.”
승리에 도취된 카라반이 기꺼운 얼굴로 읊조렸다. 왕국군을 격파하고 실라테스 평원에 지옥의 문을 세울 생각을 하니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자, 가자, 가자.”
스스로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그리 말했다. 다시 한 번 승리할 생각에 기쁨을 토했다.
하지만 직후.
황홀함이 절정에 달한 그 순간.
최상급 마인인 그녀는 깜짝 놀라 허리를 곧이 세웠다. 오싹하기 짝이 없는 감각에 서둘러 뒤를 돌아보았다.
상급 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저급한 마물들조차 제자리에 멈춰 서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측방.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 것도 없던 그 장소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이쪽을 보며 미소지었다.
“오늘도 안녕?”
코델리아 체이스.
인간재해라 불렸던 영웅전기2 최강의 대군전 플레이어.
유더처럼 영웅전기2의 자신을 뛰어넘은 것은 아니었다.
마력이나 강함만을 놓고 보자면 동수를 이룬 정도였다.
하지만 솔라리와의 만남을 통해 영웅전기2의 코델리아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보여줄게.”
어째서 자신이 인간재해라 불렸던 것인지를.
그녀가 광익을 펼쳤다.
태양의 신위가 어린 천사의 고리를 빛내며 힘을 개방하였다.
그리하여 탄생하는 것은 일천 개에 달하는 황금빛 마력의 구.
카라반이 입을 벌렸다.
다른 마인들 또한 당황을 금치 못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일천에 달하는 마력의 구들이 돌진을 개시했다.
황금빛 폭풍이 되어 전장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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